MZ세대 “배달·밀키트로”…차례 문화가 바뀐다
입력 : 2023-09-28 07:00
수정 : 2023-09-28 07:00
달라진 추석 풍경...“연휴에 여행 갈래요” 
밀키트나 배달음식으로 차례상도 간편하게
전문가 “차례 형식·절차보다 가족 화합에 의미 두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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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전엔 명절마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는데, 이번 추석에는 안하기로 했어요. 앞으로도 명절엔 차례 지내지 않고 가족끼리 연휴를 즐길 것 같아요.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만 가져도 조상님께서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요?”

# MZ세대로 대표되는 2000년대생 윤모씨(23)는 명절 차례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씨 가족은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고 각자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매년 명절마다 차례를 지냈지만, 코로나19 때 차례와 제사가 간소화되고 재작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윤씨는 차례를 지내러 큰집에 가는 대신, 6일 연휴 동안 가족·연인·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았다.

# 2년 전 결혼한 이모씨(35)는 이번 추석에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간소하게라도 제사를 지냈지만, 가족회의 끝에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기제사(조상이 돌아가신 기일에 지내는 제사)만 하는 것으로 결정 내렸다. 이씨는 “전 부치기 싫었는데 잘됐다”며 “다행히 시댁도 명절 문화가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차례상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앞으로는 명절 연휴마다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슬며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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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면세점 구역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 달라진 추석 풍경...“연휴에 여행 갈래요”  

MZ세대들이 사회로 진입하고 코로나19 이후 차례와 제사가 간소화된 영향 등으로 추석 풍경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민족대명절 추석이면 고향에 가서 친인척을 만나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던 것이 당연한 풍습이었지만, 이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2021년 5월 여성가족부가 전국 1만여 가구를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63.5%, 30대 54.9%로 20·30세대의 과반수가 제사 폐지를 원하고 있었다.

이들은 힘들게 음식을 준비해 차례상을 차리고 절을 올리는 것보다, 언제든 고인을 기억하는 마음과 평상시 가족 화합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직장인 김모씨(30)도 지난달 여름휴가를 이용해 고향을 다녀왔기에 올 연휴엔 아예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족들도 모두 바쁘고, 이젠 명절에 꼭 다 같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 같다”며 “저에게 추석은 긴 연휴지, 명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연휴가 특히 길어서 해외여행 가는 친구들도 많아졌다”며 “우스갯소리로 조상 덕 봤으면 명절에 해외여행 가고, 덕 못 본 사람들이나 제사 지낸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온라인조사 전문기관 피앰아이가 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1.2%가 고향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15.4%는 국내여행을, 10.6%는 해외여행을 간다고 밝혔다. 고향 방문 계획이 없는 4명 중 1명은 연휴를 활용해 국내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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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키트나 배달음식으로 차례상도 간편하게

MZ세대들은 차례상 차림 문화의 변화도 크게 앞당기고 있다. 아직까지 전통 차례상 차림을 고수하는 부모님에게 밀키트 등 간편하게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피앰아이가 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에게 이번 추석에 명절 음식을 어떻게 준비할지 물어본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41.2%만이 ‘직접 만들 예정’이라고 답했다. 뒤이어 24.1%는 ‘전·잡채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만 사다 먹을 예정‘, 19.3%는 ‘밀키트 활용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15.5%는 ‘적절히 배달시켜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가 특히 밀키트 활용에 대한 응답률이 26.5%로, 4명 중 1명은 밀키트를 선호했다. 이에 비해 60대는 12.8%로 20대와 비교했을 때 밀키트 활용이 절반 이하로 나타났다 .

올해는 간소화된 차례상을 차리겠다는 주부 이모씨(54)는 “20대 딸의 추천으로, 올해는 밀키트 위주로 차례상 장을 볼 것”이라며 “고물가에 재료를 일일이 사서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밝혔다.

20·30세대가 주요 고객층인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 마켓컬리는 추석을 앞두고 ‘간편 명절상 차리기' 카테고리를 준비했다. 여기엔 차례상 차림에 필요한 갈비찜·전·잡채·나물·송편 등이 있으며, 아예 이 모든 것이 차례상에 올릴 만큼씩만 구매할 수 있는 골라담기 세트도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흐름에 맞춰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인 피코크의 올해 초 설 간편 제수용품 매출은 2022년 설보다 2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에서도 간편식과 밀키트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6.7%과 30%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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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의 간소화 방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추석 차례상. 연합뉴스

◆ 전문가 “형식·절차보다 가족 화합의 장 의미 두어야”

지난해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고 간소하게 제사를 지낼 것을 권고했다. 표준안에 따르면 차례상 기본 음식은 송편·나물·구이·김치·과일·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생선·떡을 놓을 수 있으면 좋다.

성균관 측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외의 음식을 더 올리고 싶다면 가족들이 서로 합의해서 결정하면 된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관계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회가 점점 더 핵가족화되고 가족 제도의 붕괴, 심지어는 인구 소멸을 향해 가다 보니 우리 전통이라 하더라도 조금씩 현대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바쁜 사회에서 차례상 준비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들이 차례와 제사 준비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면 간소화하는 것이 옳다”며 “결과적으로 명절 차례 문화를 이어가는 것의 목적은 가족 간 화합과 소통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아영 기자 ayo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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