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이제 대한민국은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 담겨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부 네티즌만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그들만이 아는 언어로, 그들만의 관심 주제를 다루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언뜻 보면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는 최근 일일 평균 방문자 수가 290만명에 달하는데도 현실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이와 다르다. 현실의 많은 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하고 있다. 아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되는 일도 많다. ‘헬조선’ 담론도 맨 처음 디시인사이드에서 시작한 것이다. 올해 20대 대선의 향방을 가른 ‘이대남’ 현상도 ‘에펨코리아’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대남’도 ‘버닝썬’도 커뮤니티서 발화

현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반영된다. 지난해 초 인기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의 학교폭력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학폭 폭로 사건’은 ‘네이트판’에서 시작됐다. 2018년에 제기돼 연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은 ‘보배드림’이 출발이었다. 이 커뮤니티에 김상교씨가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였던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 버닝썬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에서 비롯됐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 이상 현실의 잉여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주간조선이 여론조사기관 피앰아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만 20~59세 성인 남녀 1000명 중 60%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루 1시간 이상 이용하는 ‘헤비 유저’도 30%가 넘었다. 대개는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 등 포털사이트 카페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디시인사이드나 네이트판같이 별도의 도메인을 가진 커뮤니티 사이트를 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직시해 분석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주간조선은 4회에 걸쳐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적 영향력, 이용자와 커뮤니티의 미래까지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다음호에 이어질 기사에서는 빅데이터 업체 아르스프락시아와 여론조사업체 피앰아이에 의뢰한 분석 결과가 포함될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각자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일컬어진다. 디시인사이드나 에펨코리아같이 개별 도메인을 가진 커뮤니티는 물론이거니와 포털사이트의 카페 역시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커뮤니티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바일 앱으로만 제공되는 커뮤니티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은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따로 두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인만, 에브리타임은 대학생이나 대학 교직원만 이용 가능하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채팅방이 커뮤니티의 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누구나 같은 관심사만 가졌다면 참여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이다. 적게는 여러 명, 많게는 수백 명이 한데 모여 대화하는 오픈채팅방은 커뮤니티 게시판을 실시간 대화방으로 옮겨 놓은 형태다.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 오픈채팅방의 등장은 커뮤니티를 ‘올드한 것’으로 여기는 일각의 시선을 뒤집는 것이다. 종종 커뮤니티는 소셜미디어보다 영향력이 적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커뮤니티 게시글을 접한다. 커뮤니티 인기 글만 캡처해 보여주는 계정도 있을 정도로 커뮤니티 게시글은 온라인 세상의 주된 이야깃거리다.

확실히 사람들의 이야기 방식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점점 온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정치 이슈에 대해 날카롭게 주고받는 대신 커뮤니티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토론을 벌이곤 한다. 한때는 인터넷 뉴스 기사의 댓글이 공론장의 역할을 나눠 가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댓글의 기능까지 커뮤니티가 가져간 모양새다. 주요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먼저 온라인 게시글을 확인한다.

말하자면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들에게 ‘안락한’ 대화 자리를 제공한다. 거의 모든 커뮤니티는 정치적·사회적 성향을 비교적 뚜렷이 드러낸다. ‘엠엘비파크’처럼 친(親)민주당에서 반(反)문재인으로 성향이 변화하는 경우는 있어도, 정치적 성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커뮤니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간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이용자들이 커뮤니티를 찾는 이유가 공감과 동조를 얻고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감정 싸움과 신경질적인 비판은 커뮤니티 안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용자들은 언제나 커뮤니티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한다. 한 이슈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는다. 의외로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글과 댓글을 많이 남기는 편인데, 60~70%의 이용자가 글이나 댓글을 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흐름 속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디시 게시글 월 2700만, 루리웹 회원 420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용자 개인을 중심으로 ‘공감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는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사회 갈등 요소들은 지인들과 쉽게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대신 커뮤니티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대화의 양이 커뮤니티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을 민감하게 주목한 사람들은 종종 특정 커뮤니티의 여론을 전체의 여론이라고 인식하곤 한다. 점점 더 많은 언론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에펨코리아를 비롯한 몇몇 커뮤니티의 여론을 이대남의 목소리라고 보도하는 식이다. 보도된 이대남의 ‘목소리’는 다시 현실 세계에 편입된다. 정치인들이 이 ‘목소리’를 인용하고 시민들이 반응하면서 ‘목소리’는 힘을 얻는다. 요즘 현실의 여론이 커뮤니티에서 형성되는 과정이다.

게다가 각각의 커뮤니티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루리웹’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특화돼 있다. ‘뽐뿌’에는 생활 정보가 넘쳐난다. ‘맘스홀릭베이비’는 오로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에 집중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한 커뮤니티에만 정착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며 생활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 성향에 맞춘 정보와 이야기만 접하게 되는 ‘필터 버블’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활성화된 커뮤니티들의 교집합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커뮤니티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웹 분석 사이트 시밀러웹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는 디시인사이드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은 주간조선에 지난 7월 한 달 디시인사이드에 게시된 글 수는 모두 2700만개, 댓글 수는 7370만개라고 밝혔다. 총 조회 수는 28억회가 넘는다고 알려왔다.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커뮤니티 루리웹의 운영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루리웹의 일 평균 조회 수는 2300만회에 달한다. 회원 수만 420만명이다. 커뮤니티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주간조선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움직이는 커뮤니티 중 대표적으로 16개를 꼽아 봤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글 수와 댓글 수, 방문자 수 등 일단 커뮤니티 규모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단순히 커뮤니티 규모만으로 16개를 꼽지는 않았다.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특성 또한 고려되었다. 예를 들어 ‘일베저장소’의 경우 방문자 수는 여전히 많지만 영향력이 줄어든 상태이며 전체 커뮤니티 환경에서 고립된 상황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꼽지 않았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이용자 층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특히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다. ‘더쿠’와 ‘네이트판’, ‘인스티즈’와 ‘여성시대’, ‘맘스홀릭베이비’ 같은 경우는 주 이용자 층이 여성이다. 여타의 커뮤니티에는 남성 이용자가 훨씬 많다. 

연령대별로도 나뉜다. 에펨코리아에는 20대가 많지만 보배드림에는 40대가 훨씬 많다. 더쿠와 인스티즈는 비슷해 보이지만 인스티즈의 연령대가 더 낮은 편이다.

플랫폼으로도 나눌 수 있다. 에브리타임과 블라인드는 별도의 모바일 앱을 통해서만 접속이 가능하다. ‘여성시대’와 ‘이종격투기’는 포털사이트에서 정해준 플랫폼에 얹혀 개설되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는 공동체로서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커뮤니티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다르다. 더쿠는 ‘덬’, 여성시대는 ‘여시’다. 반말을 쓰거나 존대말을 쓰는 것도 차이가 난다. 정치 성향도 다르고 사회적 이슈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는 각자 ‘정착’한 커뮤니티가 하나씩은 있다. 단순히 글과 댓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직접 글을 쓰고 댓글을 달기도 하면서 커뮤니티에 동화되어 간다. 커뮤니티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루리웹 하는 남자’ ‘여성시대 하는 여자’라는 수식어를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점에서 커뮤니티는 단지 사회를 반영하는 것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더 이상 커뮤니티를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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