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ruit&Customer

언론소개

생각 나누는 한 명만 있어도… 외로움은 극단으로 치닫는 빨간불

페이지 정보

작성자 PMI 댓글 0건 조회 1,900회 작성일 23-02-15 10:39

본문

[교회, 외로움을 돌보다] <1부> 대한민국 ‘나홀로’ 보고서 ③ 나는 이렇게 외로웠다
 

2023021421311065609_1676377870_0924287120.jpg 

주민 4가구 중 3가구가 ‘1인 가구’인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골목 전봇대에 월 10만원대 입주가 가능한 고시원 전단지가 붙어 있다. 


외로움엔 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그 크기는 해가 비치는 각도와 강도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사회가 비자발적 외로움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마음의 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는 줄기도 커지기도 한다. 국민일보는 이 시대의 외로움을 진단하기 위해 ‘짙은 그림자’를 경험한 이들을 찾아갔다. 나이와 성별, 거주 지역과 당면한 현실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극단으로 향하는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바로 외로움이다.
 

고독생(生)과 사투하는 중년 1인 가구 


“마누라랑 두 아들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그런데 이 동네에 다시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요. 대학동 산꼭대기까지 밀려 들어오는 사람 중에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1980~90년대 자신의 20대 시절을 오롯이 관악구 대학동에서 보낸 김학민(가명·62)씨는 “보증금 없이 월 10만원 초반에 몸 누일 곳을 구할 수 있는 데는 서울 하늘 아래 이 동네밖에 없다”고 했다. 거주민 4가구 중 3가구(75.4%, 2021년 12월 기준)가 1인 가구인 대학동은 전국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동네로 꼽힌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 후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일용직 노동자와 실직·알코올중독·카드빚 등으로 생활고를 겪는 독거 중장년들이 채우고 있다.

사업 실패와 소송, 이혼으로 이어지는 위기는 김씨의 삶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5년 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온 그는 꼬박 6개월을 좁디좁은 방 안에만 머물렀다. 고독한 생(生)은 고독한 사(死)만큼 참혹했다. “도저히 (밖으로) 못 나가겠더라고요. ‘어떻게 죽어야 잘 죽나’ 종일 이 생각만 했어요.”

조사전문기관 피앰아이가 지난달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로움 척도 지수’ 조사에서 60대 이상 응답자들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문항에 최저점(27.35점)을 기록했다. 전체 평균(29.84점)보다 2.49점, 50~59세(32.08점)에 비해서는 4.73점이나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2023021421311065610_1676377870_0924287120.jpg 


혼자 산 지 20년 차, 대학동 9년 차인 이준형(가명·69)씨는 “관계가 끊어져 1인 가구가 된 사람들은 자기가 겪은 상황을 이해받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크다”며 “불안감이 커질수록 고립감은 높아지고 결국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을 것이란 생각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MZ세대 멍들게 하는 상대적 박탈감 


취업준비생 박현정(가명·25)씨는 대학 졸업 후 자취를 시작하면서 우울증을 겪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외로움이 커졌다. 가족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씨는 “부모님과 대화가 단절돼 가족에게 속내를 털어놓기 어렵다 보니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자취방에 있을 때보다 답답함이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가 2021년 2월 발표한 자료는 구직 문제로 인한 청년세대의 우울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전체 응답자 중 우울증 자가진단(CES-D) 척도가 23.2점으로 ‘중등도’ 이상을 보였고, 특히 구직 기간이 ‘1년 이상’인 응답자부터는 25.9점을 기록했다. 25점 이상이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중증에 해당한다.

일명 ‘카페인(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우울증’이라 불리며, 스마트폰을 쥔 채 혼자 시간을 보내는 MZ세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문제도 심화하고 있다. 박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또래 친구들이 여행을 가고 호텔에서 밥을 먹고 명품을 인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전했다.
 

꼬리에 꼬리 무는 자살 고위험군 


인간관계의 상실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추승훈(가명·20)씨는 지난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각각 자살과 고독사로 잃었다. 7세 되던 해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 형과 함께 생활해 온 추씨는 공황장애를 겪을 만큼 큰 충격에 빠졌다. 2개월 사이 잇따라 비보를 맞닥뜨린 그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다 지난해 말 후폭풍처럼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어야 했다. 추씨는 “1년 휴학을 결정하고 병원 치료 중”이라며 “지금도 문득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고 나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 10년간 누적 자살유가족은 13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자살에 노출되지 않은 일반인 대비 우울증 발병 위험이 7배나 높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2년 전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을 경험한 성재훈(가명·40) 목사는 “공허함, 특정 대상을 향한 분노 등 처음 느껴보는 복합적 감정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며 “한국교회 내엔 여전히 자살유가족들이 목양적 돌봄으로부터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가리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정서적 울타리’에 대한 필요다. 이씨는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한 명만 있어도 마음의 빨간불이 주황색 불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최기영 유경진 기자 ky710@kmib.co.kr 

Total 1,980건 2 페이지
언론소개 목록
제목
Mov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