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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성 92% "여성 상대 폭력 심각"?…여성가족부 조사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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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MI 댓글 0건 조회 3,718회 작성일 22-05-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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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성 92% "여성 상대 폭력 심각"?…여성가족부 조사 어떻게 했을까 


1. 여성가족부가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법에 5년에 한 번 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2016년에 처음 시행했고 이번이 두 번째 조사입니다. 앞으로 5년 간 범정부적으로 많은 예산이 들어갈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바탕이 되는 조사인 만큼, 의미가 큰 조사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92%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이 심각하다, 혹은 매우 심각하다'는 답을 했다는 겁니다. 10대부터 40대까지는 그 수치가 95%가 넘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결과입니다. 5년 전 첫 조사에서는 여성의 88.8%가 같은 대답을 했었는데, 5년 사이에 그 수치가 더 올라갔다는 건 우리 사회가 퇴보를 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2. 설문조사, 여론조사는 어떻게 물었는지, 질문 내용이나 질문하는 방법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부분까지 들여다봐야 결과 뒤에 속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조사 문항을 입수해 봤습니다. 전체 질문지는 총 2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질문은 15페이지에 있는 '인권과 안전' 항목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질문으로 가는 과정이 눈에 띕니다. 먼저 본인이 각종 성 관련 범죄를 겪은 경험이 있는지, 또 그런 문제가 일어날까 봐 걱정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이 질문들을 다 지나고 나면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3. 이 설문조사에 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죠.


먼저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각종 위험한 상황을 하나하나 듣습니다. 직접적인 성범죄를 겪는 경우는 물론이고, '위협적인 상황'을 겪었는지 까지 포함한, 상당히 범위가 넓은 질문입니다. 그러면 머릿속에 그런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겠죠. 그러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정도가 어떠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심각하다' 는 답을 하는 경우가 자연스레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4. 또 한가지 다른 보도에서는 짚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 조사가 전화나 인터넷 조사가 아니라, 조사원이 직접 사람을 만나서 질문을 하는 면접조사였다는 겁니다. 조사원이 얼굴을 보면서 여성들이 겪는 각종 범죄 유형을 읽어준 뒤에,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폭력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고 직접 물어봤다는 뜻입니다.


안 그래도 여론조사는 자신의 생각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응답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선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실태조사'에 응한 경우라면, 우리 사회 양성평등에 문제가 있다는 대답을 해야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중립적으로 조사를 하기 위한 노력이 질문 문항이나 방법에 담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질문 구성에 그것도 면접조사라면, 편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5. 그러면 2016년 첫 조사 때도 문항 구성이 같았는지, 당시 설문지도 입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질문 방법이 달랐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그리고 난 뒤에 구체적인 범죄 유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조사 방법을 뒤집은 건데, 이렇다면 다른 설문이 되기 때문에 5년 전 수치와 비교도 의미가 없습니다. 


6. 연간 8천 건의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여론조사 전문 기관, 피앰아이에 이 질문 문항들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문항을 만드는데 인권 전문가는 참여했을지 모르지만, 설문조사 전문가는 참여하지 않은 것 같다"는 평가가 돌아왔습니다. "조사 방법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설문 문항을 구성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도 했습니다. 


성범죄를 겪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 바로 앞에 있는 이 질문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여가부 

강한 표현을 써서 질문을 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이 압도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원하는 응답을 유도하는 질문이라는 겁니다. 이 질문으로 폭력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높여놓은 다음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떻게 보는지 질문한 것이기도 하고요.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조사 자ㅛ 


또 각종 성폭력을 경험했는 묻는 질문에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설문조사 질문은 뜻을 명확히 설명하고 구성이 단순해야 하며, 원하는 대답을 유도하지 않도록 짜야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답변하는 사람이 실제 피해자가 된 경우와 위협을 느낀 경우는 적잖은 차이가 있는데도 뒤섞어 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민감한 문제인 만큼 면접원이 직접 물어봤을 때 사실대로 답변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질문으로서 가치도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7. 그래서 당신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보는 거냐, 이쯤 해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시급한 양성평등 문제를 풀기 위해서, 방법이 조금 잘못됐더라도 수용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민감한 문제인 만큼, 더 가치중립적이고 설득력 높은 방법을 고민하고 활용해야만 불필요한 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산이 투입될 정책의 근거가 되는 조사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정책을 저렇게 조사해서 결정하느냐"는 생각이 퍼지면 정부 전체의 신뢰도에도 금이 갈 수 있습니다.


자문을 구한 여론조사기관 피앰아이도 국가 세금으로 진행되는 승인통계인 만큼, 조사 결과가 왜곡되어 해석되고 국민에게 전달돼서는 안 된다고 제언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조사 설계부터 조사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충분히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여성가족부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기관이 하는 조사는 설계부터 시행까지, 여론조사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안을 법이나 규정으로 못박을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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